[251004] 부여역사탐방 - 충남/부여

2025. 10. 6. 01:06충청도

[251004] 부여역사탐방 - 충남/부여

 

 

궁남지~부여왕릉원~백제문화단지~부소산성~낙화암~가림성(성흥산사랑나무)

 

한가위 넉넉한 연휴에 급할것도 없으니 늘 그랬었던것처럼 목포에 내려가 배 타고 제주도로 가기로 하고 가는 길에 한번도 가 보지 않았던 부여에 들러 역사탐방도 하고 아름다운 나무도 보기로 한다.

 

 

부여 평야를 의미하는 벌에서 연유했다한다.

 

 궁남지(宮南池)
궁남지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제 사비시대의 궁원지(宮苑池)이다. 별궁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의 동쪽 일대에는 대리석을 팔각형으로 짜 올린 어정, 기와편, 초석(礎石)이 남아 있다. 1964년 대한민국 사적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 다음백과 -

 

 

 

궁남지는 백제 무왕(武王)의 출생 설화와 관련이 있다. 백제시대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던 중 용신(龍神)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서동(薯童)으로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이다. - 다음백과 -

 

 

 

 

 

 

 

 

 

 

 

 

 

 

 

 

 

 

 

 

 

 

 

 

 

 

 

 

 

 

 

 

 

 

 

 

 

 

● 부여왕릉원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백제 시기에 조성된 대형 고분군이다. 예전 명칭은 '능산리 고분군'이었지만 '백제왕릉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4] 2021년 9월 17일 문화재청 고시 제2021-112호로 공식 명칭이 '부여 왕릉원'으로 변경되었다. 바로 옆에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 사지[5]와 사비의 외곽성에 해당하는 부여 나성[6]이 있다. 능산리 고분군의 입장료를 내면 모두 관람이 가능하다.

크게 3개의 무덤군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사비 시대의 백제의 왕릉군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에 7기의 왕릉급 고분과 동서로 다수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함께 위치해 있다. 발굴 조사 이전에 모두 도굴되어 소수의 유물만이 수습되었다. 일반적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쌍릉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왕과 중국 허난성 뤄양시에 묻힌 의자왕을 제외한 모든 사비 시대 백제왕들은 이곳에 묻혔다고 추정하고 있다.[7] 물론 무령왕릉의 지석처럼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나 무덤의 시대별 양식 변화나 출토품의 양상을 연구한 결과 정황상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8] 또한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9]에서 공주·부여·익산 일대에 분포한 백제의 다양한 유적들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다음백과 -

 

 

 

 

 

 

 

 

 

 

 

 

 

 

 

 

 

 

 

 

 

 

 

 

 

 

 

 

 

 

 

● 백제문화단지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백제문화단지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건립한 한국 최대 규모의 역사테마파크이다. 넓은 부지 위에 웅장한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았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백제의 왕실 사찰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 마주하는 능사 오 층 석탑은 단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이다. 위례성은 한성백제 시기의 성으로 사비궁과는 다른 시대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제형루에 올라서면 단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체형루에 올라서서

 

 

 

 

 

 

 

 

 

 

 

 

 

 

 

 

 

 

 

● 부소산성

대한민국의 사적 제5호.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소재한다. 백제의 도성이었으며, 백제 성왕때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서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테뫼식과 포곡식이 혼합된 산성이며, 동·서·남문 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는 고란사·낙화암 등의 유물이 남아있다. - 다음백과 -

 

 

 

 

 

 

 

● 낙화암

낙화암은 부여군 부소산 북쪽 백마강(금강) 변에 서 있는 바위 절벽이다.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 낙화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절벽에는 조선 후기 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쓴 낙화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부소산성을 통해 직접 올라가 정자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올려다보는 것도 좋다. 낙화암 아래에는 고란사와 고란사 선착장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부소산성, 고란사 외에 부여 관북리유적,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구아리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향교,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 -다음백과-

 

 

 

 

 

 

 

 

 

 

 

 

 

 

 

 

 

 

 

 

 

 

 

 

 

 

● 가림성
부여 가림성은 백제 후기 수도였던 사비 도성을 수호하기 위해 금강 하류 대안의 산정에 축조한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501년 축조된 기록을 토대로 가림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백제 산성 중에서 옛 지명과 축성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다. 성흥산 8부 능선에 설치된 테뫼식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 다음백과 -

 

 

 

 

 

 

 

 

 

 

 

 

 

 

 

 

 

 

 

 

 

 

 

 

 

 

 

 

 

 

 

 

 

 

 

 

 


● 부여 동영상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